몇 년 전부터, 책을 읽은 뒤에는 중요한 부분이나 읽으면서 했던 생각들을 파일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컴퓨터를 정리하다가 원래의 폴더가 아닌 다른 곳에서 파일 하나를 발견했다. 파일은 사랑에 관해 다룬 심리학 책을 읽고 정리한 파일이었는데, 내용 중에 첫눈에 빠지는 사랑에 관한 부분이 있었다.
그 책에 따르면 첫눈에 빠지는 사랑이란,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상대방을 본 순간 무조건적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건적으로 빠지는 것이라고 한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의 경우 그 대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연인의 모습에 가까운 사람이며 그것은 자신의 내적 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책은 첫눈에 반하는 사랑의 유형을 4가지로 구분하는데 두 가지는 부모와 관련이 있고 두 가지는 자신과 관련이 있다.
첫째 유형은 자신의 부모와 비슷한 사람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이 바로 부모이다. 또한 유년기에 가장 긴밀한 애정의 대상 또한 부모인 것이다. 이 때문에 무의식 중에 우리는 부모와 같은 연인을 찾는다. 둘째 유형 역시 부모와 관련되는데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부모의 상이 만족스럽지 않았을 경우 반하는 대상은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해온 부모의 상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한다.
셋째와 넷째 유형은 자기 자신과 관련되는데, 셋째 유형은 이상적인 자신, 결국 자신에게 없는 장점을 가진 사람 즉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다. 재미있는 것은 넷째 유형인데 넷째 유형 역시 자신과 관련된 모습이지만 멋지고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구원하고 싶은 과거의 모습, 혹은 현재에 아쉬운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상대에 대해 짧은 시간에 파악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첫눈에 반한 대상은 진정으로 자신과 사람이라기 보다는 상대의 분위기나 외모에 자신이 바라는 특질을 일방적으로 투사시킨 것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도 두 번쯤, 상대에게 한눈에 반했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 경우는 상대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던가 아니면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너무 성급하게 다가가는 바람에 상대를 놀라게 하는 뻘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고 한동안 후회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었다.
어떻게 보아도 연말이다. 첫눈에 반했던 옛 사랑이 기억나기도 하고, 그 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하며, 술 한잔 함께할 친구가 그리운 것이 자연스러운 때인 것 같다. 아마도 이렇게 몇 일이 지나고 12월 31일이 되면, 나는 지난 몇 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라디오로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내년 계획을 새울 것이다. 그날이 되기 전까지는 나 자신을 정리해 볼까 한다. 나를 첫눈에 반하게 했던 그녀들의 눈빛만큼이나 아름다울 2010년을 진실하게 맞이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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