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

식장에서는 대학 1,2학년을 함께 한 친구 S를 만나 같이 앉게 되었다. 그날의 결혼식은 코스를 먹으면서 보는 좀 긴 결혼식이라, S와 나는 이런저런 옛날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대학 시절, 우리는 차가 끊기는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곤 했고, 서울에 살던 나는 차가 끊기면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던 S의 자취방에서 종종 신세를 졌다. S와 나는 20대에 있을 법한 혈기왕성(?)하면서도,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떠올리며 10여년 전의 추억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S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던 어떤 일을 이야기를 해주었다.

S의 말에 따르면, S와 다른 친구 그리고 나는 늦은 밤까지 술을 많이 먹고 S네 집에서 다 같이 잤단다. 잠을 자던 S는 목이 말라 새벽녘에 깨어 났는데, 방 한쪽에서 내가 벌써 일어나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뭐하나 하고 봤더니, 스텐드를 켜고 S가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고 했다. 무슨 책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S는 술 진탕 먹고도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던 내 모습이 참 인상적인 장면이었고, ‘현모는 참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을 하며, 이후에도 종종 그 생각이 났더란다.

아마도 S의 기억은 맞을 것이다. 20대의 나는 술을 먹어도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있었다. 그리고 학교 공부는 잘 안했어도 항상 가방에 읽고 싶은 책 한 권씩은 가지고 다녔다. S가 말한 그날은 전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새벽에 깬 나는 다른 친구들이 다 자니까 자연스럽게 책을 읽었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떤 계기로 책 1000권을 읽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20대 때는 매년 적어도 20권, 많게는 50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30대가 되어서는 매년 독서 계획을 세우지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10여권 정도만 목표로 세우고 그것만 간신히 달성하곤 했다. 작년에는 새해 첫 날 올해 책을 15권 읽겠다고 목표를 세웠는데, 연말에 결산을 해보니 10권 밖에 읽지 못했다.

사업을 시작하고, 내 개인적인 일들도 많아졌다지만, 아마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최근에는 20대 때처럼 새벽에 눈을 떠서 책을 읽었던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S와의 대화는 내가 잊어버렸던, 20대의 나 라는 사람을 기억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2020년의 1월에 책을 읽어야 겠다는 마음을 다시 가지게 해 주었다.
다음날, 일기를 적으며 S에게 고맙다고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20대의 나를 잊지 않으려,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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