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진정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업

인간을 진정 행복하게 만들 있는 사업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이유를 행복으로 정의한다.

사람들은 행복을 얻기 위해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결국 마음의 상태이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궁극적으로 행복한 상태에 도달하고 거기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나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용기’와 ‘만족’이다.

 

자신이 원하는 가치있는 것들을 ‘실제’로 얻기 위해서는 많은 경우 ‘용기’가 필요하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행복하지도 않고 비전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일을 멈추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하다.

또 현재 하는 일이 비전이 있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원하는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그 일을 끝까지 해나가기 위해서는 또한 용기가 필요하다.

즉,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이기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벤처기업을 운영한다. 벤처가 3년을 생존할 확률은 1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망하지 않기 보다는 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일 수 있다.

그런데 벤처기업들이 실제로 언제 망할까?

벤처기업들은 어떤 이유로든 대표이사가 사업을 포기할 때 망한다.

만약 재무적으로 파산하였더라도, 대표이사가 포기하지 않고, 자기가 하려는 업을 성공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한다면 그 사업은 계속 되는 것이고, 회사는 망한 것이 아니며,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지 않거나, 포기하기 때문에 행복에 다가가지 못하고 좌절하는 것 같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려면, 사람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모두가 용기를 가지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도전할 필요는 없다.

대신 현재 자신의 상황에 진정으로 ‘만족’하고 살아도 된다.

현재의 자신의 상황에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다면, 모두가 도전을 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현재 대한민국에 상대적으로 빈곤하고 힘든 사람은 많지만,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최저시급을 받고 한달 내내 일해서 최저시급 5580원씩 하루에 8시간 한 달에 25일을 일하여 1116000원을 번다고 해도, 30만원이면 한달 내내 고시원에서 전기담요를 깔고 자며 추위를 피할 수 있고, 6천원씩 식당에서 밥을 사먹을 수 있다.

최저 시급을 받고 일하더라도, 절대적으로는 추위에 시달리거나 지속적인 배고픔을 겪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최저 임금을 받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불행한 이유는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절대빈곤에 시달리지 않더라도 상대적인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은 많다.

구직하는 후배들은 직장은 얻은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보다 연봉이 높은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문직을 하고 있는 부러워하고,

전문직을 하는 친구들은 성공하여 크게 사업을 하는 사업가들을 부러워한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것 같은 정치인 부러워한다.

이러한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과 자신과의 현재 상태와의 비교는 끝이 없다.

 

이처럼 사람들이 고통 받는 이유는  절대 빈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남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사회의 문제로 돌리거나, 또는 자신을 비하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남과 비교하지 않고 현재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고, 그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면 사람들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조금 더 쉽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진정한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고,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하게 해주는 사업을 하고 싶다.

사업이란 사람들에게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여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많은 사업들이 있다.

하지만 현재 존재하는 사업들은 행복에 가장 중요한 요인인 ‘용기’와 ‘만족’에 대해서는 올바른 형태로 주고 있지 못한 것 같다.

현재 ‘용기’와 ‘만족’을 주는 곳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곳은 방송국과 교회 인 것 같다.

 

먼저 방송국은 사람들에게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것들에 대한 환상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또 성공한 사람들의 에너지 넘치는 강연 등을 들려준다.

현실을 잊고 용기를 내지 않아도 마치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얻은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또는 용기를 내는 사람들의 강연이나 이야기를 듣게 하면서 일시적으로 용기가 나는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이는 삶을 변화시킬 진정한 용기를 주지 못한다.

그래서 용기란 그때뿐이고, 더 안 좋은 것은 환상을 주는 드라마에 취해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다시 시궁창 같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만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종교는 인간에게 만족을 가르쳐 주려고 한다.

그런데 그 만족은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기만적이다.

(나는 신을 믿는다.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종교가 주는 ‘만족’이라는 것은 현실이 안 좋다고 해도

‘그냥 견디면 죽은 다음에 신이 너를 좋은 곳으로 보내줄 것이다.’ 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족은 현재의 감정인데 종교가 주는 만족이라는 것은 미래에 신이 모든 것을 해줄 것이라는 전제이고,

그 근거 또한 신이라는 증명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생각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개인적으로는 진심으로 신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만족은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리얼한 ‘용기’와 ‘만족’을 주고 싶다.

그것은 방송국과 교회 사이의 어디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방법이 무엇일지는 아직 모르겠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가진 모든 심리학적 지식과, 설득의 방법론과 지혜를 모아서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우리는 언제든지 그 프로그램에 접속하여 프로그램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로그인하여 대화하는 것 만으로도 프로그램은, 사람들에게 예수나 석가모니, 달라이라마와 이야기하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것이다.

그 대화를 통해 사람들은 다시 한번 진정한 용기를 얻고 꿋꿋하게 나아가거나, 아니면 현실에 대해 감사하고 ‘만족’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진정한 용기와 만족을 느끼게 하고 대가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사업인 것이다.

이는 19살 때부터 하던 고민이지만 아직은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더 분명한 답을 찾아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는 꼭 그런 사업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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