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황소이야기

 

여우와 황소이야기 (벤처와 스타트업 관계자들 이야기)

 

2011년 두 번째 창업을 하고, 많은 벤처 관계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커다란 명함집 두 개가 꽉 찾으니 못 잡아도 아마 수 백명은 만난 것 같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스타트업 벤처를 창업한 창업자들이었다. 창업자들과 만나보며 언젠가부터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두 부류란 바로 ‘여우’ 와 ‘황소’ 이다.

 

먼저 ‘여우’들은 참 현실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여우들은 눈치가 빠르기에 대기업에 가서 백날 일해봐야 결국은 만족스런 보상을 받기 어렵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그들은 숫자나 영어로 된 경제,경영 용어를 활용하여 자기 아이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꾸미어 내는 것을 잘하며, 또 이를 바탕으로 하려는 사업에 대해서 쉽게 실현이 가능하고 꽤 구체적인 것처럼 보이는 기획서를 만들어 낸다. 이런 능력을 활용하여 사람들에게 투자도 잘 받아내고, 똑똑한 사람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그런데 여우들은 계산이 빠른 반면, 사업에서 벌어지는 어려움을 견디는 능력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사업이 기막힌 아이디어와 기획으로 하루아침에 성공하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업은 성공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또 그 시간 동안 책상에서 나온 기획으로는 예상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비효율적이여 보이는 시도를 하며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는 분명 어렵고 힘들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여우들은 이런 일의 중요성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며 여우들은 처음 기획 할 때 보지 못한 점점 더 많은 어려움들을 보게 되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점점 커져가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위험이 커지면 많은 여우들은 자기에게 투자한 투자자와 따라온 직원들을 포기하고 이유를 만들어 도망가곤 한다.

처음에야 사업이 남의 돈만 투자 받으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업은 다양한 방면에서 나타나는 예상 가능하지 않은 어려운 문제들을 이겨내야 하는 과정이다. 또 그 문제들을 이겨내기 위한 필수적인 덕목이 성실함이라는 것을 여우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황소는 어떨까?

‘황소’들은 참 이상주의적이고 우직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순진하기에 대기업에 가서 궁극적인 행복을 얻기도 어렵고 이상을 위해 도전할 수도 없는 삶을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황소들은 사업을 시작할 때 진심으로 자신의 이상과 꿈이 실현될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 꿈의 이루어서 구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정열을 다 바쳐 성실하게 노력한다. 이런 진심을 통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심정적인 지지와 동참을 얻어내고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평가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황소들은 이상만을 보고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했기에, 조만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이 금방 황소들의 이상과 노력을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업에서 이상에 대한 열정만으로 시장을 설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면 황소들은 시장을 설득할 자금을 얻기 위해 투자자들을 찾아가 꿈과 이상에 대해 이야기 해보지만, 곧 현실적인 계산을 하는 투자자들은 꿈과 열정만 보고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본금은 바닥을 보여간다. 황소들은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 빚을 내면서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하나하나 배워가지만, 그들은 곧 배워가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자본금이 떨어져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꿈을 이루는 것이 점점 늦어지고, 동료들이 미안해하며 떠난다 해도 황소들은 끝까지 버티지만 개인과는 달리 회사는 부도가 나면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된다.

황소는 꿈과 이상을 가지고 어려움을 견디며 한발 한발 나아가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벤처 기업을 한다는 것은 회사를 생존하게 하는 일이며, 동료들을 추스르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금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준비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된다.

 

창업자들 중 여우와 황소의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상을 가지고 출발하는 스타트업 벤처기업에서는 대략 3 : 7 정도로 여우보다는 황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여우와 황소 중 결국 누가 크게 성공하게 될까? 이것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99% 정도의 확률로 둘 다 실패한다. 사업이란 그럴듯한 여우의 잔머리로 성공하기에는 판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부분들이 많고, 황소의 성실함과 강인한 힘만으로 성공하기에는 해내야 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대표, 즉 창업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성격은 이상을 추구하고 그것을 순진하게 믿는 황소와 같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창업자가 사업을 시작하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어려운 시간들을 버티어내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성실한 태도와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실한 태도와 에너지는 언젠가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순수한 확신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그 다음에는 사업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통해 부족한 점을 빨리 깨닫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들을 연구하여 익혀야 한다. 특히 사업의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배워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황소는 여우처럼 빠르게 상황은 판단하는 법을 익히고,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 그것을 무기로 삼아 다시 강력하게 밀고 나갈 수 있다. 즉 창업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황소의 기질과 여우의 능력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우의 기질과 황소의 능력이 아니라 황소의 기질과 여우의 능력인 이유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머리로 배울 수 있는 부분은 쉽게 채울 수 있지만, 기본적인 성실하고 순수한 기질을 만들어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창업을 한 순간부터 창업자는 주인의 보호를 받는 안전한 목장이 아니라 거친 전쟁이 벌어지는 야생에서 살게 된다. 야생에서 만나게 될 기존 시장의 거대한 맹수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창업자는 황소의 마음을 가지고 빠르게 배워 여우의 능력 또한 얻어야 한다. 그렇게 모든 것을 배우고 성장해 나가서 용기와 지혜를 모두 가진 에너지 넘치는 새로운 동물, 즉 호랑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이 글은 내 개인적인 생각을 적은 글이다.

그런데 다 쓰고 아니 아직 초보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창업자인 내가 창업자의 기질과 성격에 대해서 쓴다는 것은 어쩌면 참 주제넘은 짓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몇 년이 지나고 뭔가를 더 배운 뒤에는 지금 쓴 글들이 부끄러워 질지도 모르겠다.

이제 겨우 3년이 지났고, 나는 아직도 기초적인 수준이다. 지금까지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것도 다 몇 일 지나고 보면 해볼만했다.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가볼 생각이다. 언젠가 좀 더 배워서 좀 더 내용이 담긴 글을 쓰고 나서 다시 뿌듯함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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