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베인 엔 컴퍼니의 부사장님의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특강에서 그분은 삶에 대해 한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각 단계마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분은 그것을 나이대 별로 한 단어로 요약하여 설명하셨다.
먼저 10대의 단어는 Friend이다. 10대에는 인생에서 함께할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야 할 때이다. 이때는 친구가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다른 무엇보다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녀석이 소위 ‘짱’인 것이다. 다음으로 20대의 단어는 Love이다. 20대 젊은이들이 오랜만에 만나면 흔히 묻는 말은 바로 ‘너 여자친구(남자친구) 있냐?’ 이다. 이처럼 20대의 청춘들의 최고 관심사는 ‘연애’인 것이다. 그분은 이 이야기를 하며 ‘누구나 심장에 뜨거운 상처 한 두 개쯤은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며 씨익 웃기도 했다. 그렇게 피끓는 20대를 통과하여 30대가 되면 사람들의 관심사는 Work로 바뀐다. 누군가를 만나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느냐를 묻고 답하며, 자신이 하는 일에서 성취와 만족을 얻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다음 40대가 되면 Work라는 단어는 이제 다시 Money라는 단어로 바뀐다. 40대가 되면 더 이상 사람들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느냐를 묻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그렇게 해서 ‘얼마나 벌었느냐?’ 라는 것이 중요해진다고 한다. 그렇게 40대가 지나가고 50대가 되면 사람들이 신경 쓰는 것은 Children이 된다고 한다. 아마도 이들이 대략 우리 부모님들의 나이대일 것이다. 이 나이대의 사람들이 만나면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아들 딸들의 이야기이고 어느 집 아들이 얼마나 공부를 잘하고 좋은 직장을 다니는지, 얼마나 잘 하고 있는 지가 그들의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 그렇게 50대를 통과하여 60대가 면의 인생의 중요한 단어는 Health가 된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도 해봤고 돈도 벌어놨고 자식도 길러 났다. 이제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야 하는데 60대가 되면 몸이 옛날 같지 않기에 이때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건강’ 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고 베인의 부사장님은 강연을 듣던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여러분 그럼 70대의 중요한 단어는 무엇이겠습니까?’ 부사장은 정답을 맞추는 사람은 센스가 있는 사람이므로 베인 1차 면접은 자기가 통과시켜 주겠다고 하셨다. ‘죽음’ ‘평화’ 등등의 많은 답이 올라왔지만 청중들이 다들 20대의 대학생들이라 그런지 부사장님이 생각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계속 강연을 이어간 그분이 말한 70대의 답은 바로 10대의 Friend와 60대의 Health가 합쳐진 Healthy Friend란다. 살면서 열심히 일도 해봤고, 돈도 벌었고 자식들도 잘 키워놓고 내 몸도 하고 싶은 일을 할 만큼 건강한데, 그때가 되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저 세상으로 떠나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삶의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Healthy Friend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꼭 나이를 기준으로 구분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매 순간마다 우리가 열중하게 되는 것들은 항상 달라진다. 때로는 지금 하고 있는 어떤 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느껴지고, 그저 주어진 것 같은 사람들에 시간을 쏟는 것이 낭비로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인간이기에, 삶에 있어서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어려움을 함께 할 있는 다른 사람을 원한다. 그리고 그때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궁극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 일이나 돈 성공 같은 것들이 때때로 행복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충분하게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함께할 사람이 꼭 필요한 것이다.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언제나 나는 똑똑하고 타인보다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를 썼던 것 같다. 21살 때 처음 대학가서 조모임 하며 조장이랍시고 분위기를 몰고 가서, 당시 4학년이던 99학번들에게 다듬어지지 않은 내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키기도 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상대 측 입장을 듣고 이해하기보다는 실력행사(?)에 가까운 행동을 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고, 그걸 또 좋아했던 어리석은 행동을 하던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시간들을 통해 얻은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잃은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서 때때로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실수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기 보다는 나도 모르게 눈앞에 나의 어린시절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때때로 믿었던 누군가의 무신경한 행동에 좌절하는 때도 있고, 나도 바쁘다는 핑계로, 또는 나의 부주의함으로 아직도 알게 모르게 실수할 때도 아직 있는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소중한 친구들에게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려고 하고 있다. 곧이어 다가올 수 많은 내일들에도,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먼 훗날에도 내 스스로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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